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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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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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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의 가람배치
부석사 가람배치 무량수전 조사당 안양루 범종루 자인당 응진전 취현암 선묘각 삼성각 단하각

* 주요전각 클릭 시 관련설명이 나옵니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번지에 위치한 부석사는 25개 동의 건물 외에 1개의 암자가 있다. 부석사는 의상이 화엄종을 펼치기 위해서 창건한 사찰로 교리와 신앙체계가 요구하는 공간구성을 건축적으로 잘 구현한 곳이다. 의상의 뒤를 이은 법손인 신림 대에 이르러 가람의 틀이 완성됐다. 주요 전각의 배치, 무량수전의 구조미, 교리와 연결된 지형의 해석 등은 한국건축의 빼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지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뛰어난 구성과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중첩된 장면은 한국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부석사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으로서 구조적 아름다움으로 찬사를 받는 무량수전과 조사당이 있으며, 다수의 국보 및 보물급의 유물이 있다.

무량수전(無量壽殿)

부석사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불전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체적 건축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건물로, 현재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

1916년 해체 보수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1358년 왜병의 침탈을 당했다가 1376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보다 앞서고 있으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 사이의 거리가 길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어 보인다. 팔작형식의 지붕 경사는 후대 건물에 비해 완만하다. 도리가 9개나 되는 9량집으로 큰 건물이다.

무량수전에서 가장 유의하여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 항아리형 보 등의 수법이다. 이것은 모두 착시에 의한 건물의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 구조를 만들기 위한 고도의 기법들이다. 먼저 안허리곡은 건물의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이며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우는 것이다. 이 건물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의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다. 다음으로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배흘림 역시 기둥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 기둥은 강릉의 객사문(客舍門)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

건물 정면은 분합문과 들어 올릴 수 있는 광창을 두었으나, 이는 중수를 거치면서 바뀐 듯 하다. 원래의 창호는 건물 후면에 있는 것과 같이 신방목을 가진 문틀에 널판문을 달고 그 좌우에는 창을 두었을 것이다.

공포는 주심포 양식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전형적인 북방 계통의 수법으로 주두와 소로는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 건물만의 특징이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을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매우 특이하다.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기둥을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는 매우 드문 방식이며 뛰어난 감각이 느껴지는 구조이다.

조사당(祖師堂)

부석사 조사당

조사당은 무량수전 뒷산에 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이다. 낮은 장대석의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창호는 전면 중앙에 출입문이 있고 그 좌우에 광창이 있다. 지붕은 전면이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절의 창건주인 의상대사를 모신 건물로 내부에는 의상대사상과 의상대사의 일대기를 봉안하고 있다. 또한 건물 내부의 입구 좌우에 보살상·사천왕상 등 고려 말에 그려진 벽화(국보 제46호)가 있었는데, 지금은 벽화가 있던 벽면 전체를 떼어 따로 유물전시각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그려진 벽화는 모사도이다.

한편 조사당의 처마 아래에는 비화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의상 대사가 평소 지니고 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지금까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조사당은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시대인 1201년에 단청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이 확실하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때 왜적의 병화로 소실된 것을 1377년(우왕 3)에 원융국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들어 1490년(성종 21)에 다시 중수하였고, 1493년(성종 24)에 단청을, 1573년(선조 6)에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현재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어있다.

안양루(安養樓)

부석사 안양루

안양루는 무량수전 맞은편에 있는 누각으로, 2단으로 쌓은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누 밑을 통과하여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어 일종의 문 역할도 하는데 전면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무량수전 쪽에서 보면 단층 전각처럼 보인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이중의 기능이 부여 되어 있어 건물 전면에는 ‘안양루’, 뒷면에는 ‘안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조선 중기 건물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안양루는 다포식 건물로 기둥은 층단주 형식으로 되어 있고, 2층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 천정은 우물천정이다.

2층 누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부석사 경내의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소백산맥의 봉우리들이 줄을 지어 펼쳐져 있어 경관이 뛰어나다. 예로부터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노래하는 시문(詩文)을 남겼는데 누각 내부에는 많은 시문 현판들이 걸려 있다.

범종루(梵鐘樓)

부석사 범종루

범종루는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건물로 아래를 통도로 사용하는 누각식 문이다.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는데 안양루와 범종각이다.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 듯이 지은 누각이라면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이다.

특히 이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아있다. 건물의 지붕은 정면은 팔작지붕, 무량수전을 향한 뒤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부석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 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 보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범종각을 옆으로 앉혀놓고 뒤쪽지붕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이 전반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고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한 목수의 지혜가 돋보인다.

자인당(慈忍堂)

부석사 자인당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식 맞배집이다. 자인당은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 경에 해체하고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내부에는 삼존상을 봉안하고 있는데, 이 삼존상은 1957년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동방사지(東方寺址)에서 옮겨 온 석불이다. 중앙에 석가여래좌상(보물 제1636호)이고 좌우는 지권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20호)이다.

응진전(應眞殿)

부석사 응진전

무량수전 영역의 북편 위쪽에 떨어져 있다. 자인당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1976년에 번와 보수하였다. 이 건물의 공포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장식적인 익공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는 내부에 석고로 만든 석가삼존불과 고졸한 십육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취현암(醉玄庵)

부석사 취현암

취현암는 조사당 동쪽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가 지금은 부석사 산내암자로서 쓰이고 있다.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하고 부석사 경내에서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묘각(善妙閣)

부석사 선묘각

선묘각은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의상대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를 모신 건물이다. 규모도 작고 기단도 없이 초라하여 마치 작은 사찰의 산신각 같은 느낌을 준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 규모의 맞배집인데 가구 방식이나 부재를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최근세의 건물인 듯하다. 내부에는 1975년에 그린 선묘도가 걸려있다.

삼성각(三聖閣)

부석사 삼성각

삼성각은 무량수전 서쪽 석축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대석으로 4단 쌓은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건물을 세웠는데 기단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 공포는 익공 형식이지만 마치 다포 형식처럼 기둥 사이에 주간포를 1구씩 끼워 넣은 점이 특이하다.

삼성각은 칠성, 독성, 산신 세 분을 한 곳에 모신 전각으로 현재의 삼성각은 원래 축화전(祝花殿)이라 불렀는데 영조 때 대비의 원당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1979년의 보수 때까지는 원각전(圓角殿)이라 하였고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셨었다. 현재 내부에는 중앙에 미륵반가사유상과 칠성도를 봉안하였다. 칠성도의 좌측에는 산신도를, 우측에는 독성과 독성도를 봉안하고 있다.

단하각

부석사 단하각

최근세에 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납도리 맞배집으로 응진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건물 내부에는 손에 쥐를 들고 있는 작은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단하'가 무엇을 뜻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을 쪼개 땟다는 단하소불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 선사를 모신 것이라면 선종과 연관이 있는 전각이다. 그러기에 도량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선방 근처에 지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