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통도사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통도사

사찰소개 자연환경 역사 가람배치 문화재 인물 설화 안내
통도사의 가람배치
통도사 가람배치 금강계단·대웅전 일주문 천왕문 범종각 만세루 가람각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 불이문 관음전 용화전 대광명전 개산조당·해장보각 장경각 세존비각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영각 설법전 보광선원 탑전 응향각 일로향각 교육실 황화각

* 주요전각 클릭 시 관련설명이 나옵니다.

통도사의 가람은 영축산 골짜기의 큰 계류를 주축으로 세 개의 영역으로 배치되어 있다.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금강계단과 대웅전의 경우, 그 축이 계류를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찰의 진입축과 직교하여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건축적 가치가 높다. 각자 특성 있는 전 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류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세 영역으로 구축되었으며, 이를 통해 시대에 따른 다양한 교리체계와 신앙의 대상들이 하나의 산사 안에 공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대웅전(大雄殿)

통도사 금강게단·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5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4년(인조 22)에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불이문 쪽과 금강계단을 향하여 이중으로 된 합각(合閣)이 양 측면, 전면 3곳에 마련된 것이 이채롭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중기 불당(佛堂)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연구 및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받고 있다.

사방을 돌아가며 각각 다른 편액을 걸어 놓은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동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 서쪽에는 ‘대웅전(大雄殿)’,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 중에서 정면에 있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란 편액은 일주문과 마찬가지로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있다. 그것은 건물 뒷편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고 한다. 현재 금강계단 및 대웅전은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주문(一柱門)

통도사 일주문

이 문은 1305년 초창되었으나 중창은 알 수 없고 지금의 건물은 1770년 두섬대사(斗暹大師)가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정면 3칸의 다포식 9포작으로, 맞배지붕에 겹처마인데 네 귀에는 활주를 세웠다.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글씨인 ‘영취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는 흥선대원군이 쓴 것으로 영취산의 장엄한 기상에 어울릴 만큼 매우 장중하다. 또한 두 기둥에 걸어둔 주련은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즉, ‘부처님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통도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종찰(佛寶宗刹)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천왕문(天王門)

통도사 천왕문

하로전(下爐殿) 구역으로 들어가는 이 문은 고려 1337년 취암대사(翠岩大師)가 처음 세운 것으로,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졌다. 문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크기는 건물규모에 비해 작은 편이다.

건물은 중앙 칸을 통로로 하고 좌우 칸에 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각(梵鍾閣)

통도사 범종각

만세루 옆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 팔작지붕 건물로 1686년 수오대사(守悟大師)가 초창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그 뒤에 중수된 것이며, 하층에는 범종을, 상층에는 법고ㆍ목어ㆍ운판 등 불전사물을 봉안하고 있다.

기둥은 층단주로 구성하였고, 활주는 상층 마루에 얹도록 하였다. 현판에는 ‘범종루(梵鍾樓)’ㆍ‘범종각(梵鍾閣)’ㆍ‘통도사(通度寺)’ 등의 글씨가 적혀있고 사면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만세루(萬歲樓)

통도사 만세루

만세루는 법회나 법당의 주요행사를 열 때 사용하던 누각이다. 부처의 설법이 만세를 누린다는 뜻으로 만세루라 이름을 지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1644년에 영숙화상(靈淑和尙)이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기둥의 높이가 길고 기둥 사이가 넓어 대규모의 건물로 느껴진다. 가운데 칸 양쪽 기둥 위에 밖으로는 용머리를, 그 안쪽으로는 용꼬리를 새겨 출입구를 강조했다. 내부 역시 기둥 위와 그 사이에 꽃 모양 받침의 장식이 있어 위엄이 느껴진다.

원래 누각은 땅에서 높이 들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건물은 돌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원래 벽이 없고 기둥만 있던 것인데, 내부바닥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라는 점을 빼고는 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전체적인 구조로 보아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며,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람각(伽藍閣)

통도사 가람각

가람각은 도량을 수호하는 가람신(伽藍神)을 모신 전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건물이다. 이 건물은 1706년 처음 건립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근래 주지 원명(圓明)에 의해 신축된 것이다. 4면 한 칸씩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도량의 수호를 위해 가람신을 봉안하고 있다. 예전 건물의 외벽에는 적마의 그림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소실되어 볼 수가 없다.

영산전(靈山殿)

통도사 영산전

영산전은 하로전(下爐殿) 구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좌우에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배치되어 있다.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704년 송곡선사(松谷禪師)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건물 안팎으로 벽화(壁畵)가 남아있어 주목을 끈다.

외벽의 벽화는 풍화(風化)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벽화는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특히 내부벽화의 하나인 다보탑(多寶塔) 그림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작품이다. 이 벽화(보물 제1711호)는『법화경(法華經)』의 「견보탑품(見寶塔品)」을 표현한 것으로 탑신(塔身)에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자리를 나누어 앉은 모습이다. 이외에도 벽에는 양류관음(楊柳觀音)과 나한(羅漢), 산수(山水)를 표현한 그림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된 천정에는 연꽃과 보상화문(寶相華文)이 그려져 있고, 대들보에는 황룡ㆍ청룡 등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화려한 장엄 속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으며, 주변으로는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봉안하였다. 이 팔상도는 1775년에 그려졌는데 당시의 불화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그림이다.

영산전은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보전(極樂殿)

통도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1369년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그 후의 중건과 중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건물의 내부에는 목조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극락보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외벽의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이다. 배의 모습은 앞을 용머리(龍頭), 뒤를 용꼬리(龍尾)고 나타내었고, 그 앞뒤에는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합장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비록 근세에 그려지기는 했으나 구도와 내용면에 있어 보기 드문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극락보전은 뛰어난 짜임새와 벽화로 인해 중요성을 인정받아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사전(藥師殿)

통도사 약사전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극락보전과 마주한 위치에 있다. 처음 창건은 1369년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세웠다고 하며, 그 뒤에 언제 보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18세기 후반에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공포는 건물 4면에 모두 둘러져 있는데 반해 약사전은 앞면과 뒷면에만 공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과 약사불회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19호)를 봉안하였다.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이문(不二門)

통도사 불이문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만나는 통도사의 세번째 문으로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1305년에 처음 지은 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다포식 팔작지붕이며 판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건물의 특징은 대들보 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재를 삼각형으로 짠 뒤, 그 부재 위에 장혀를 걸쳐 중도리ㆍ하중도리ㆍ종도리를 얹어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이는 고식(古式)의 가구법(架構法)으로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이다. 또한 중앙에는 대들보 대신 코끼리와 호랑이가 서로 머리를 받쳐 지붕의 하중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매우 독특하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님을 뜻한다.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 선(善)과 불선(不善) 등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의미한다. 불이문을 통과하여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면 부처가 되고 해탈을 이룬다고 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음전(觀音殿)

통도사 관음전

관음전은 통도사 중로전(中爐殿) 구역에 있는 3개의 법당 중 하나로 가장 앞쪽에서 남향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1725년 용암대사(龍岩大師)가 초창하고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에는 목조관세음보살상과 1858년에 조성한 관음도를 봉안하였다. 그리고 벽에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에 머물고 있는 관음보살과 남순동자를 나타내기도 하였고, 32응신(應身)을 나타내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을 표현하였다. 대들보에는 사자문 단청과 하늘을 나는 비천(飛天)이 그려져 있다.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화전(龍華殿)

통도사 용화전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1369년에 건립하였다. 이후 1725년에 청성대사(淸性大師)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특징은 세부장식에 용무늬를 많이 썼다는 점과, 내부 공포가 5출목 형식으로 천장높이까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부 벽면에 7폭의 대형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모두 경전에 등장되는 교훈적인 내용이나 불교 의식의 장면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이후에 출현한다는 거대한 미륵불좌상을 봉안하였다.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통도사 대광명전

중로전 구역에서 가장 웅장한 대광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725년에 축환대사(竺環大師)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내부에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신불후불도ㆍ신중도 등이 봉안되어 있다. 원래 이 전각에는 1759년 임한(任閑)이 그린 삼신불도(보물 제1042호)와 1804년에 조성된 신중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79호), 1904년에 조성된 팔금강탱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2003년에 모사도를 봉안하였다.

이 건물에서 재미있는 것은 법당내부 좌우 천장 아래 도리 위에 적혀있는 글귀이다. 내용은 “내 집에 한 손님이 있으니, 정녕 바다 사람이다. 입으로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능히 불의 정신을 죽인다(吾家有一客 定是海中人 口呑天漲水 能殺火精神)”라는 5언 절구이다. 이는 건물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화부적(防火符籍)으로 여겨진다. 대광명전은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 해장보각(海藏寶閣)

통도사 개산조당· 해장보각

개산조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해장보각으로 통하는 문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3칸 모두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의 솟을삼문과 같다.

해장보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진영을 봉안한 조사당(祖師堂)이다. 건물은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 기둥이 배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창건주 자장율사의 진영과 함께 고려대장경 1ㆍ2ㆍ3ㆍ4권이 봉안되어 있다.

해장보각이라는 전각이름은 경전이 용궁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인도 고대의 전설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또한 대장경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와 같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장경각(藏經閣)

통도사 장경각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초창 및 중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 18세기 이후의 건물로 생각된다. 장경각은 통도사에 전해지는 혹은 외부에서 유입된 경판(經板)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통도사에서 약 10km 떨어진 운흥사(雲興寺)가 조선 말기에 폐사될 때 옮겨온 중요한 경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세존비각(世尊碑閣)

통도사 세존비각

개산조당 옆 금강계단 오른쪽으로 붙어 있는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자그마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 건물은 1706년(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한 것이다.

비석에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진신사리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두 개의 함에 담아 금강산에 계신 서산대사에게 보냈더니, 서산대사는 이곳 영축산 통도사가 바로 문수대성(文殊大聖)이 자장스님에게 부촉(咐囑)한 승지(勝地)이므로 이곳에 다시 봉안하도록 했고, 나머지 한 개의 함은 태백산(영변 묘향산)에 봉안하도록 하였던 사실들을 석비 전면에 기록하고 있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 도승지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뒷면에는 성능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가 쓴 석가모니의 행적과 각지의 시주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명부전(冥府殿)

통도사 명부전

명부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초창은 1369년이며 1760년 춘파대사(春波大師)가 중건하였다. 그 후 1887년 불탄 것을 다음해인 1888년 호성대사(虎惺大師)가 중건하였다.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조선 말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세부가 많이 생략된 절충식 수법으로 짜여 있다. 통도사 내의 여러 건물 중 조선 말기인 고종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건축양식의 시대적 변모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건물 외부의 포벽에는 여래도(如來圖)와 삼국지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에도 봉황이나 별주부전 등의 설화가 포벽에 그려져 있다.

내부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ㆍ무독귀왕ㆍ시왕상 등 명부권속(冥府眷屬) 등과, 근래에 조성한 시왕도를 봉안하였다. 원래는 1798년에 조성된 지장도와 1775년에 조성한 시왕도 등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현재 이 건물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9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전(應眞殿)

통도사 응진전

응진전은 1677년에 지섬대사(智暹大師)가 창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 중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이다. 지대석ㆍ면석ㆍ갑석 등을 고루 갖추어 고풍스런 멋이 느껴지는 기단 위에 동향으로 앉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비교적 간결하지만 주심포 형식으로 된 공포는 다포식을 많이 수용한 절충양식을 보여 준다.

내부에는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를 모시고, 다시 그 좌우로 16나한상과 범천, 제석천 등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1775년 유성(有誠)이 조성한 석가모니후불도와 1926년 축연(竺衍) 등이 조성한 16나한도가 봉안되어 있다.

특히 이 건물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안팎에 그려진 벽화들로서, 바깥의 측면에는 금강역사가, 내부에는 달마ㆍ나한ㆍ학ㆍ독수리ㆍ호랑이 등이 그려져 있다. 현재 이 건물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9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성각(三聖閣)

통도사 삼성각

삼성각은 1870년 영인대사(靈印大師)에 의해 초창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935년 경봉선사(鏡峰禪師)가 중건한 것이다. 건물 형식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로 주심포계 익공식 맞배집이다.

일반적으로 삼성각은 칠성ㆍ독성ㆍ산신 등을 봉안한 전각인 데 비해, 통도사의 삼성각은 지공(指空)ㆍ나옹(懶翁)ㆍ무학(無學) 등 세 스님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영각(影閣)

통도사 영각

통도사의 역대 주지 및 큰 스님들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는 건물로 정면 8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초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1704년에 지은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법전(說法殿)

통도사 설법전

정면 9칸, 측면 11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화엄산림법회 같은 큰 법회를 열 때 강당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건물에는 ‘설법전(說法殿)’, ‘국지대원(國之大院)’, ‘불지종전(佛之宗殿)’, ‘대방광전(大方廣殿)’ 등의 편액을 달았다. 이 가운데 ‘대방광전(大方廣殿)’ 편액은 원래 대웅전의 서쪽에 걸었던 것을 옮겨 단 것이다.

보광선원(普光禪院)

통도사 보광선원

사역의 서쪽에는 보광선원(普光禪院)이라 하여 통도사의 선원(禪院)이 자리하고 있다. 이 구역에는 정면 9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인 보광전과 방장(方丈) 스님의 거처인 정변전, 부속건물로 요사와 욕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보광전의 초창은 1757년 범음대사(梵音大師)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현 건물은 1970년 건립하여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탑전(塔殿)

통도사 탑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통도사 남쪽 남산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남산 정상에는 오층석탑이 하나 서 있는데, 탑전은 이 석탑을 예배하기 위한 공간으로 건립된 것이다.

응향각(凝香閣)

통도사 응향각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영산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1757년 법음대사(梵音大師)가 처음 창건했다고 하며 현재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일로향각 교육실

통도사 일로향각 교육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응진전과 바로 이웃하고 있다. 이 건물은 상노전의 법당을 관리하는 노전(爐殿) 스님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황화각(皇華閣)

통도사 황화각

황화각은 통도사의 스님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 건물로 천자각이라고도 한다. 초창은 1317년에 이루어졌으며, 1647년 탄변화상(坦卞和尙)이 중건하고, 1988년 성해화상(聖海和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자 모양으로 두 개의 건물을 합친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