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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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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의 가람배치
대흥사 가람배치 대웅보전 천불전 대광명전 응진당ㆍ산신각 명부전 표충사 조사전 범존각 침계루 해탈문 백설당 용화당 의중당 동다실 청운당

* 주요전각 클릭 시 관련설명이 나옵니다.

넓은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흥사는 크게 남원과 북원 그리고 별원(표충사,대광명전,박물관)의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대웅보전

대흥사 대웅보전

대흥사의 주불전으로 대흥사 가람 북원에 자리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전각으로 다포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공포는 외2출목ㆍ내3출목이며, 포의 형상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외부로 뻗은 쇠서 위에 연봉을 조각하였으며, 내부는 모양을 판형으로 만들어 운봉형(雲峰形)으로 단장하였다.

어칸 상부에 자리한 2행 종서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로 백설당에 걸린 추사의 ‘무량수각’ 편액과 함께 대흥사 명필로 손꼽혀 장성 백양사 및 승주 송광사에서 그 글을 모각할 만큼 뛰어난 필적이다.

건물 내부는 우물마루 상부에 이단층의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그 내부에 반자와 운궁형 닫집을 형성한 화려한 불전으로, 대들보 사이에 용두와 칠보문양을 단장하고 있다. 후불벽 앞에는 불단을 두어 목조삼세불(석가-약사-아미타)과 삼불회도를 봉안하였다.

현재의 대웅전은 침계루에 걸린 「대웅전중창상량문(大雄殿重創上梁文)」과 「대웅전중건기(大雄殿重建記)」를 통해 1667년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나, 화려한 치장과 치목수법,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1899년 북원 일곽의 화재 이후 육봉선사의 발원으로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천불전(千佛殿)

대흥사 천불전

천불전은 대흥사 가람 남원 중심에 자리 잡은 천불의 옥불상을 봉안한 법당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공포는 겹처마의 화려한 다포식이다. 충량의 용두머리 조각과 초각재 등 조선후기 건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전면에는 편액과 4기의 주련이 있는데, 편액은 대웅보전을 쓴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이다. 건물 내부에는 계단식 불단 위에 경주 옥석으로 조성된 천불과 목조석가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천불전이 자리한 남원은 『대둔사지』의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초에 일어난 큰 화재로 극락전·대장전·약사전·지장전 등 많은 불전이 소실된 곳으로 지금의 천불전은 1813년 완호(玩虎)에 의해 중건되었다.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대흥사 대광명전

대광명전은 대흥사 가람 별원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별원은 영역의 대광명전을 중심법전으로 수행공간인 선방에 해당하는 동국선원, 생활공간에 해당하는 수심당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후면에 장엄되었던 법신중위회 삼십칠존도(法身中圍會 三十七尊圖)는 현재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대광명전은 상량문에 따르면 1841년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건립한 것으로, 추사의 제자로 당시 전남수군절도사인 신관호(申觀浩)와 소치 허련(小痴 許鍊)가 제주에 유배중인 추사의 방면과 축수를 기원하며 지었다고 전한다. 대광면전 편액은 신관호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대광명전은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당(應眞堂)ㆍ산신각(山神閣)

대흥사 응진전·산신각

북원 일곽의 대웅보전 좌측에 자리한 이 건물은 왼쪽으로부터 응진당ㆍ산신각을 한 채에 연이어 수용한 점이 특이하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건물은 응진당이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획되고 산신각이 정면 2칸, 측면 3칸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사이 판장으로 담을 쌓고 출입에 용이하도록 쪽문을 달아 놓았다. 건물 내부는 우물마루 상부에 연등천장을 가설하고 불단을 설치한 모습으로, 천장 상부에는 구름 위를 비천하는 청룡과 황룡도가 장엄되어 있다.

응진당은 목조석가삼존과 16나한ㆍ판관ㆍ사자ㆍ인왕을 권속으로 모시고, 그 후면에 1901년 금어 석옹철유(石翁喆侑) 외 5인이 조성한 석가모니후불도과 16나한도ㆍ 사자도를 봉안하고 있으며, 불단 상부에는 관음과 세지의 보살패를 두고 있다. 산신각은 연등천장 상부에 황룡과 청룡도를 단청하고, 불단 위에 1901년 조성된 산신도와 독성도을 봉안하였다.

명부전(冥府殿)

대흥사 명부전

명부전은 북원 대웅보전의 북서쪽에 남향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는 주심포의 2익공 양식이다.

건물 내부는 5량가로 우물마루 상부에 연등천장을 수장하고, 지장보살과 무독귀왕ㆍ도명존자의 삼존을 중앙 불단에 봉안하고 있다. 그 외 좌우로 시왕(十王)과 판관ㆍ녹사ㆍ사자 등 여러 명부의 권속들을 정렬하게 배치하고 있으며, 지장보살 뒷면에는 1901년 금어 경선응석(慶船應釋)이 그린 지장도가 봉안되어 있다.

건물은 1899년 북원 일곽의 화재 뒤 20세기 다시 건립된 것으로, 1901년 지장탱의 봉안과 함께 시왕과 명부권속들이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표충사(表忠祠)

대흥사 표충사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액사우(賜額寺宇)로서,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기 위해 1669년에 건립되었다. 표충사 일곽의 풍제문인 내삼문 정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맞배건물로 장대석 기단 위에 자리한다.

건물 외부는 자연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전면에 2분합의 띠살문을 단장하였으며, 측면과 배면은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편액으로는 1789년(정조 13)에 정조가 하사한 ‘표충사(表忠祠)’ 편액과 ‘어서각(御書閣)’이란 편액 두 기가 있으며, 단정한 채색의 단청으로 사당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특히 표충사 사액(賜額)은 1788년 천묵(天黙)ㆍ계홍(戒洪) 등이 서산과 유정ㆍ처영의 영정을 모실 사우의 건립을 모색하면서, 당시 호조판서 서유린(徐有隣)이 서산대사의 사적과 사우건립의 정당성을 왕에게 주청하여 건립허가와 함께 ‘표충’이라는 사액을 받게 된 것이다.

건물은 전반적으로 조선후기의 건축기법을 살펴볼 수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활동한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유정ㆍ처영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현재 이곳은 부처의 삼보도량 가운데 승보(僧寶)를 존중하고 받들어 불가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도량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유가(儒家) 형식의 사당을 꾸며 매년 서산의 가르침을 받드는 제례와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표충사 영역에는 표충사 외에 보련각, 표충비각, 요사인 강례제와 명의제 등의 건물이 있다.

조사전(祖師殿)

대흥사 조사전

조사전은 표충사 영역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3폭의 조사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진영은 창건주 아도화상(阿度和尙)을 비롯하여 대흥사 13대 종사와 강사의 진영을 모신 3폭으로 구분되는데, 6명(1폭)ㆍ5명(2폭)으로 2단 구성하여 배치하고 있다.

범종각(梵鐘閣)

대흥사 범종각

범종각은 북원 응진당 우측 상단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의 낮은 기단 상부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교살로 벽체를 구성하였으며, 두리기둥 하부의 원형 초석을 수련(水蓮)의 모습으로 돋을새김하였다. 건물은 겹처마 팔모지붕의 목조건물로 면적은 5평이며, 범종각 내부에는 1977년 조성된 ‘호국대범종(護國大梵鐘)’이 봉안되어 있다.

침계루(枕溪樓)

대흥사 침계루

대흥사 북원의 출입문으로 남ㆍ북원을 가로지르는 계류 금당천(金塘川)에 접하여 자리한 2층 누각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주심포식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중층 누각건물이다. 심진교를 지나 누 아래의 통로를 통해 대웅전 앞 중정으로 출입하며,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다. 공포는 이익공으로 내부기둥이 없는 오량가구를 구성하여 상부 서까래 사이로 회골이 드러나는 연등천장을 단장하고 있으며, 상하의 기둥을 서로 분리하여 상하층의 쓰임새를 구분짓고 있다.

건물 외부는 대웅전을 향한 내벽을 제외하고 삼면을 판벽과 판문으로 처리하였으며, 정면에는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침계루(枕溪樓)’편액과 후면에 ‘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이라 쓴 두 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해탈문(解脫門)

대흥사 해탈문

부도밭을 지나 대흥사 가람에 들어서면 그 초입에 해탈문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어칸에 통로를 가설하였으며,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ㆍ인왕을 벽화로 장엄하였다. 또 어칸에는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쓴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라는 편액과 ‘해탈문(解脫門)’이라는 두 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백설당(白雪堂)

대흥사 백설당

대흥사 경내 영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서 유선여관을 지나 구림리 숲길 끝자락에 있으며, 어칸에는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이라는 편액이 있다. 일주문은 그 이름에서와 같이 기둥 둘이 한 줄로 서서 지붕을 받치고 선 1칸짜리 건물이다. 1975년에 건립되었으며, 지붕만이 목조건물로 겹처마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원래 북원에는 여러 채의 승방과 선당, 중료(衆寮)들이 있었음을 사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현재 백설당의 규모를 보아 여러 채의 승방들이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백설당 동편 처마 아래에는 제주도 유배 중에 추사가 쓴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 편액과 구한말 명신으로 미불체를 구사한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이 쓴 ‘백설당(白雪堂)’이라는 두 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자연초석을 세우고 두리기둥으로 그 칸을 세분화한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가 소략한 주심포집이다. 건립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대웅보전보다 후대에 건립된 것으로 1899년(광무 3) 10월 화재로 2년 뒤인 1901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용화당(龍華堂)

대흥사 용화당

남원일곽의 천불전 우측에 자리한 용화당(龍華堂)은 불경을 배우는 학승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1813년(순조 13)에 중건되었으며, 대흥사의 강당 겸 선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남쪽은 ‘ㄱ’자로 꺾여 돌출시킨 부분이 있어 맞배지붕을 얹어 연결시켰고, 다른 쪽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남쪽에는 온돌방 3개와 부엌을 놓고 건물의 가운데에는 큰 선방과 그 북쪽으로 작은 방 2개가 있다. 이 선방의 동서면에는 큰 퇴와 작은 툇마루를 두었고, 부엌 쪽에는 넓은 다락방을 위쪽에 두어 부엌 한쪽에서 오르내리는 계단을 두었다.

공포는 주심포계의 2익공 양식으로 행공점차가 허공에 떠있는 특이한 모습이며, 부엍 한쪽에는 투박한 통나무 계단을 가설하여 아래 판벽과 광창이 건물에 가벼운 생동감을 준다. 전반적으로 강원의 단정한 멋이 느껴지며, 휘어진 대들보와 서까래 등 자연스런 목재의 마감이 흰색으로 단장된 벽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중당(義重堂)

대흥사 의중당

표충사 일곽의 삼문인 호국문을 지나 맨 먼저 마주치는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건물이다. 의중당은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당시 6군의 군수가 봄ㆍ가을로 표충사에 제사지낼 때 가지고 온 제물을 차리던 곳이다.

동다실(東茶室)

대흥사 동다실

천불전이 자리한 남원 일곽의 돌담을 따라 용화당 좌측에 자리한 동다실(東茶室)은 차문화의 산실인 대흥사의 다실로 자리잡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건물로 청초하고 단아한 차향기를 내뿜는 단촐한 건물이다. 이곳은 초의선사가 다도를 정립한 일지암의 차를 판매하는 곳으로, 일반인들도 다도는 물론 다음을 할 수 있는 다실로 알려져 있다.

청운당(靑雲堂)

대흥사 청운당

북원 일곽의 응진당 좌측에 자리한 청운당(靑雲堂)은 일반인들의 대중방으로, 헌재 시민수련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민도리집 맞배건물로 건물 전후에 툇마루를 가설하였다. 건물 외부는 2ㆍ3분합의 띠살문을 단장하고 외부 단청으로 장엄하였으며, 어칸 상부에는 흑지에 백서로 양각된 ‘청운당(靑雲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 내부는 감실형의 불단 위에 목조석가여래좌상과 석가모니후불탱이 봉안되어 있으며, 시민선방으로서의 내부시설을 갖추고 있다. 청운당 일곽에는 대중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세면실을 비롯하여 사무실과 휴게실이 갖추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 수련법회 등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