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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대흥사

사찰소개 자연환경 역사 가람배치 문화재 인물 설화 안내
대흥사의 역사
    • 대흥사의 창건연기를 담고 있는 자료로는 『죽미기(竹迷記)』ㆍ『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ㆍ『북암기(北菴記)』 등이 있다. 창건연대로는 『만일암고기』의 기록을 따른 426년 신라 정관존자(淨觀尊者) 창건설, 『죽미기』의 기록을 따른 514년 아도화상(阿道和尙) 창건설, 875년 도선국사(道詵國師) 창건설이 있다.

      그러나 1823년(순조 23)에 간행된 『대둔사지(大芚寺志)』에서는 이들 자료의 수집을 맡은 혜장(慧藏)이 아도화상이 활약한 시기, 도선국사의 탄생연대 등을 근거로 대조했을 때 이들 자료에 제시된 창건설이 근거 없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대흥사의 현재로서는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시점을 알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러나 사찰에 전하는 여러 유물과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그 대략적인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 대흥사 일제강점기 때 전경 대흥사 일제강점기 때 전경
    • 대흥사 삼층석탑 대흥사 삼층석탑
    • 먼저 응진당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 320호)의 제작연대가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되고 있으며, 1481년(성종 12)에 지어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절의 앞마당에 신암(信菴)ㆍ총은(怱隱)ㆍ성유(性柔) 등 세 분 고승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들 고승의 구체적인 행장은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승려인 점은 밝혀진 바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대흥사는 늦어도 고려 이전인 통일신라 말경에는 창건된 고찰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대흥사는 관련된 자료가 매우 부족한 것을 보았을 때, 대흥사의 위상이 크게 부각된 시점은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이곳에 전해지고 조정과 불교계에서 모두 대흥사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조선중기 이후부터이다. 임진왜란 때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는, 대흥사를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며 만년동안 파괴됨이 없는 곳[三災不入之處萬年不毁之基]으로서 종통을 귀의케 할 곳[宗統所歸之處]”이라 하여 자신의 의발을 이곳에 전하도록 당부하였다. 이에 1604년(선조 37)에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게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대흥사는 조선시대 불교 억압 속에서도 13 대종사와 13 대강사를 중심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으며, 조선 후기 계속되는 불사가 이어졌다
연표
대흥사 연표
연대 내 용
통일신라 말경 창건
고려시대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을 조성함
신암, 사은, 성유 등 세 분 고승의 부도를 세움
1604년 서산대사의 의발을 모셔옴
1630년 극현(克玄), 덕호(德浩) 등이 진불암 중건
1647년 서산대사의 비와 부도를 건립함
1665년 심수(心粹)가 대웅보전을 중창함
1675년 융신(融信)이 만일암을 중건함
1683년 진불암을 중건함
1740년 위일(位一)이 고진불암을 중건함
1743년 두원(斗元)이 향적전을 중건함
1761년 청운당을 중건함
1780년 청담(靑潭)이 은선암을 중건함
1788년 계홍(戒洪)ㆍ천묵(天黙) 등이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한 사당 건립과 편액을 내려달라는 내용을 조정에 올림
1789년 조정의 명으로 사당을 건립하고 정조가 친필편액 ‘表忠’을 내림
1791년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西山大師表忠祠紀蹟碑)」를 건립함
정능(定能)이 고진불암을 중건함
1797년 전훤(典烜)이 남암을 중건함
1809년 자암(慈菴), 은봉(隱峰) 등이 만일암을 중건함
1811년 천불전 등의 당우가 화재로 소실됨
1812년 용화당을 중건함
1813년 완호(玩虎) 등이 천불전을 중건함
1841년 초의선사가 대광명전(비로전)을 중건함
1899년 서상실(西上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북원(北院) 일곽의 건물이 모두 불에 탐
1900년 육봉(六峰)이 대웅전 일대를 중건함
1912년 30본말사법에 의해 인근 44개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됨
1978년 서산대사유물관을 건립함
1993년 사찰명을 대흥사(大興寺)에서 대둔사(大芚寺)로 개명함
2003년 사찰명을 대둔사(大芚寺)에서 대흥사(大興寺)로 다시 개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