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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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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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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의 가람배치
선암사 가람배치 일주문 범종루 만세루 심검당·설선당 대웅전 지장전 팔상전 불조전 원통전 장경각 삼성각 무량수전 응진당·진영당·달마전·미타전 산신각 무우전·각황전

* 주요전각 클릭 시 관련설명이 나옵니다.

조계산의 동편에 자리한 선암사는 전체적으로 지세에 따라 남동향하고 있다. 중심축 선상에 일주문, 범종루, 만세루, 대웅전을 배치한 선암사는 대웅전영역 외에도 여러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 좌우에는 심검당과 설선당을 중심으로 하는 요사들이 배치되어 있고, 대웅전 후면에는 원통전과, 조사전, 불조전, 팔상전으로 형성된 공간이 있다. 원통전 위쪽으로는 동서로 나란히 상선원과 정업원이 별도의 영역을 이루며 구성되어 있는데, 상선원에는 달마전, 미타전, 응진당, 진영각 등의 7개 전각을 배치하였고, 정업원에는 무우전과 각황전을 배치하였다. 대웅전 서편에는 무량수전과 창파당 영역이, 설선당 앞쪽으로는 성보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는 중심축을 따라 후면으로 갈수록 건물의 기단이 높아지도록 계획하였으나, 그 단차이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선암사는 화재와 중창으로 여러 번 변화를 겪었지만 비교적 옛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현재 남은 건물들의 배치는 1824년에 이루어진 제6창 때와 비교적 흡사한 모습이라고 한다.

대웅전(大雄殿)

선암사 대웅전

대웅전은 선암사의 주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를 모신 불단이 있다.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그 위에 민흘림 원형기둥을 세웠다. 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외부살미는 앙서형이고, 내부살미는 연봉형으로 장식하였다. 내부 천정은 반자로 마감한 우물천장으로 상부가구가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로 주불전의 위엄과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여 준다.

대웅전의 중창 역사는 선암사에 관해 기록한 여러 사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의천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60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1823년에 다시 화재에 의해 소실된 것을 182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보물 제1311호 지정되어있다.

일주문(一柱門)

선암사 일주문

일주문은 선암사 전면에 위치한 문으로 실질적인 사찰의 경역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전체적인 모습은 전통적인 사찰의 일주문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단층 맞배 기와집으로 외4출목의 다포식 집이다. 포를 이루고 있는 주두, 첨차, 소로 등이 전체적으로 작고 가냘프다.

선암사의 일주문은 임진, 병자 양란동안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조계문중창상량문(曹溪門重創上樑門)」에 조계문이 1719년에 중창되었다고 적혀 있다. 지금의 일주문의 전신이 조계문이라 한다. 전면에는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현판이 있고, 후면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어있다.

범종루(梵鐘樓)

선암사 범종루

일주문 뒤쪽으로 자리한 범종루는 일주문과 더불어 일직선 축을 이룬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중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은 기단위에 제형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그 위에 장귀틀 동귀틀을 걸어 누마루를 깔아 범종과 목어, 법고, 운판 등을 설치한 중층을 꾸몄다.

상량문에 의하면 1935년 10월 18일에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고, 원래는 영성루(迎聖樓)였으나火方(불기운이 가장 강한 남쪽방위를 의미함)에 자리하고 있어 범종루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만세루(萬世樓)

선암사 만세루

만세루는 수많은 학승들이 강학을 하였던 선암사의 강당건물이다. 1824년에 대웅전과 함께 해붕,눌암 등이 중창한 건물로 익공형의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에 맞배지붕인 목조건물이다.

일반적으로 전통사찰에서는 누문(樓門)을 두고 누문의 밑으로 진입하여 대웅전 앞 중정으로 이어지나 선암사에서는 밑이 아닌 누(樓)의 좌우로 돌아가게 하였다.

심검당(尋劍堂)·설선당(說禪堂)

선암사 심검당·설선당

대웅전과 일주문으로 이루어진 중심축의 동·서편에 위치한 건물이다.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위치한 건물이다. 동편에 심검당, 서편에 설선당으로 단층으로 보이지만 중층건물이다. 심검당은 1층은 승려들의 수행공간이고, 2층은 수장고로 사용하고 있으며, 설선당은 1층은 승려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상층은 수장고로 이용하고 있는데 외부에서는 1층으로 보인다.

건물모양은 서울·경기지역 반가의 안채를 꾸미는 수법과 비슷한데, 내부로는 조그만 마당을 두어 개방하여 사용하고 있으나, 바깥쪽으로는 창과 벽을 둘러 ‘ㅁ’자형을 이룬다. 「승당량간록(僧堂樑間錄)」에 의하면 “1823년 3월 화재로 선암사가 전소되었고, 1825년에 심검당과 설선당을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장전(地藏殿)

선암사 지장전

대웅전 바로 우측에 직각방향 대웅전을 향해 있는 건물이다. 지장보살과 명부의 10대왕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맞배지붕 건물이다. 포 형식은 첨차와 소로를 결구하여 주심포형식을 하고 있으나 살미부분이 익공식으로 주심포에 익공형식이 가미된 모습이다.

1823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년 뒤인 1824년에 중건한 것이다.

팔상전(八相殿)

선암사 팔상전

팔상전은 대웅전 뒤편으로 조사당, 불조전과 나란히 남서향하고 있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낮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지만, 양 측면의 네 기둥만 특이하게 각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윗부분은 첨차와 소로로 외1출목의 공포형식을 취하나 살미부분이 익공형식을 하고 있어 주심포와 익공형식이 혼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내부천정은 반자로 마감되어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화장찰해도(華藏刹海圖)를 정면에 모시고 양 측면에는 팔상도를 뒷면에는 33조사도를 모셨다.

「선암사사적기」에 의하면 1704년과 1707년에 중수했다는 내용이 보여 18세기 초에 건립되었거나 손질이 가해진 건물로 여겨진다.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제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조전(佛祖殿)

선암사 불조전

대웅전 뒤쪽의 중심축선상에 팔상전과 나란히 위치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형식이 가미된 조선후기의 건물이다. 기둥머리에는 주두를 얹었고 벽면과 나란히 첨차와 소로로 이루어진 외1출목의 공포가 있어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직사각형의 살미첨차가 익공 형식을 하고 있어 이들 주심포와 익공의 두 형식이 가미된 모습이다.

불조전은 과거칠불(過去七佛)과 미래억겁천불의 불조인 오십삼불(五十三佛), 즉 육십불(六十佛)을 모시는 전각이다.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제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통전(圓通殿))

선암사 원통전

원통전은 주원융통(周圓融通)한 자비를 구한다는 뜻에서 원통전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선암사는 일주문, 대웅전을 잇는 남북축선상에 대웅전 좌우로 설선당과 심검당을 두어 중점을 형성하고 그 위에 여러 전각들을 지세에 맞게 배치하였는데 원통전도 그 중 하나에 속한다. 동남향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丁)자형 건물로 정면에 기둥과 활주를 내어 처마선을 길게 돌출시켰다. 내부는 내진과 외진으로 나뉘어 내진의 배면 한쪽을 막아 불상을 안치하는 불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내진간의 배면 이외에는 모두 문이었다고 한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후사가 없자 선암사 눌암대사에게 100일 기도를 부탁하여 순종임금을 얻게 되었는데 후에 순조임금이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대복전(大福殿)’이란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는데 현재 건물의 내부에 현판이 걸려있다.

선암사 원통전은 1660년에 경잠, 경준, 문정 등이 초창하여, 1698년에 약휴대사가 중창하였고, 그 후에 1824년에 해붕, 눌암, 익종 3대사가 중수한 건물이다. 또한 운악돈각선사(雲岳頓覺禪師)가 192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제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경각(藏經閣)

선암사 장경각

장경각은 대웅전의 북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명칭대로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조선후기의 목조건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건물이다.

잘 다듬은 장대석형 석재로 정면은 세벌대, 측면은 외벌대로 기단을 쌓았다. 특히 어칸 부분의 계단은 소맷돌 부분이 해태 모양, 사자 모양을 하여 흥미롭다. 주좌와 운두가 뚜렷한 원형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선암사의 대부분의 건물이 그러한 것처럼 기둥머리에는 창방을 걸치고 그 위에 주두를 얹고 주심포 형식을 하면서도 익공 형식을 가미한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조선후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형식으로 주심포와 익공 형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혼합한 모습이다.

삼성각(三聖閣)

선암사 삼성각

대웅전의 북서쪽에 있는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소로와 첨차가 없이 보아지와 주두를 얹고 그 위에 굵은 대들보를 놓아 장혀받침 굴도리와 직각방향으로 결구하였다.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하여 평주 위에 직접 대들보를 걸치고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다. 겹처마에 단청을 하였으며 풍판을 달았다. 퇴칸의 문은 2분합, 어칸은 4분합으로 띠살문이다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삼성각은 불교에 고유산 토속신앙이 합쳐진 신앙형태를 보여주는 전각으로 내부 중앙에 칠성단을 모시고, 좌우에 독성단과 산신단이 형성되어있다.

무량수전(無量壽殿)

선암사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선암사의 서북쪽 단부에 위치한 건물로 현재 교육원으로 쓰이고 있다. 옛이름은 천불전이라 한다. ‘ㅁ’자형 건물로 중앙에 중정을 두었고 전체가 중층을 이루고 있다. 중정에는 소대(消臺)가 보인다. 건물의 평면 형식은 양반집의 안채와 비슷하나 규모가 크고 공간을 나눔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할당하였다.

1988년 해체보수 중 전면 2층 종도리 하부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원안은 선암사에서 보관하고 원안의 상량문을 재작성한 것과 중수 상량문을 함께 본래의 위치에 넣었다. 이 중수상량문에 의하면 ‘崇禎紀元後四甲辰(헌종 10년, 1814)’에 중수 상량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응진당(應眞堂)·진영당(眞影堂)·달마전(達磨殿)·미타전(彌陀殿)

선암사 응진당·진영당·달마전·미타전

응진당은 선암사의 경내 가장 뒤쪽에 별도로 설치된 작은 승원이다. 이 승원 영역내에는 응진당, 달마전, 진영당 등이 배치되며 응진당이 본 승원 영역의 주불전이고 중심축 좌측에 달마전(達磨殿), 우측에 진영당(眞影堂)이 배치되어 있다.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주심포 형식을 하면서 익공 형식이 가미된 모습이다. 내부에는 삼존불(석가모니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과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진영당은 응진당 우측에 배치되어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선암사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건물이다. 민도리 형식으로 응진당 쪽의 지붕은 맞배과 반대쪽은 팔작지붕인 특이한 형태의 지붕모양을 보인다.

달마전은 응진당 좌측에 배치되어 있는 정면 5칸, 측면 6칸의 'ㄱ'자형 건물로 응진당 영역의 요사와 선방 형식을 하고 있다. 원래는 중심축과 나란한 건물인 벽안당이 있었으나 그 끝을 직각 방향으로 연결하여 'ㄱ'자형을 이룬다. 지붕의 형식은 응진당 쪽에는 맞배, 그 반대쪽에는 팔작지붕이다.

미타전은 응진당 우측에 나란히 위치한 요사 형식의 승방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인 건물이다. 기둥 위에는 특별한 공포 형식을 취하지 않은 민도리 형식이다.

산신각(山神閣)

선암사 산신각

응진당 바로 뒤에 있는 건물로 정면과 측면이 각1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한 단촐한 건물이다. 보통 산신각은 가람의 맨 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선암사 산신각 또한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였다. 내부에는 산신도 1점을 봉안하고 있다.

무우전(無憂殿)·각황전(覺皇殿)

선암사 청운당

무우전은 선암사 북쪽에 위치해 있는 요사채이다. ‘ㄷ’자형 건물로 전면이 둘러싸여진 무우전의 뒷마당에는 각황전이 있다. 전면 8칸반 측면 6칸의 건물로 전면은 팔작지붕이고 양측면의 날개는 맞배지붕이다. 전면, 후면의 툇마루가 설치된 곳은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각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덤벙주초를 쓰고 있다.

각황전은 선암사 경내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우전의 안쪽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소규모 전각이 바로 각황전이다. 공포는 다포 형식으로 외2출목에 내부는 출목이 없이 첨차에 연결된 가늘고 긴 부재의 끝을 적절하게 층을 쌓아 올렸다. 내부 가구 구조는 목탑에서 주로 나타나는 무량구조로서 천정에 우물반자가 짜여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겹처마로 되어 있다.

각황전은 861년에 도선국사가 이곳에 터를 잡고 초창했다는 전설이 있는 건물로 고려 1092년에 대각국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1660년에 경잠, 경준, 문정 3대사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으며, 1760년에 상월, 서악 2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져 왔다.

1991년 7월 해체복원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현존하는 건물은 1801년에 건립되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비보를 위해 각황전을 건립하고 철불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본 건물의 건립시기와 배경을 밝혀주고 있다. 현재 내부에는 건물 창건 당시 주조했다는 철불이 봉안되어 있다.